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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 이미지의 삶과 사랑

Mitchell, W. J. T (William John Tho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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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 : 이미지의 삶과 사랑 / W. J. T. 미첼 지음 ; 김전유경 옮김
개인저자Mitchell, W. J. T.(William John Thomas), 1942-
김유경
발행사항서울 : 그린비, 2010
형태사항528 p. : 삽화(일부천연색) ; 23 cm
총서사항프리즘 총서 ;003
원서명What do pictures want? :the lives and loves of images
ISBN9788976826022
일반주기 색인수록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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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매체정보
1 00011819086 701 010고 [신촌]도서관/사회·역사자료실(중도3층)/ 대출가능
2 00011813335 701 010고 =2 [신촌]도서관/사회·역사자료실(중도3층)/ 대출중 2022-10-05

책 소개

왜 사람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문제작에 과민반응을 할까? 왜 우리는 어머니 사진에서 눈을 도려내는 일을 꺼릴까? 이미지에 대한 이러한 미신적 태도의 주된 이유는 그 이미지의 ‘살아 있음’ 때문이다. 시각예술, 문학, 대중매체 등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우상숭배, 공공 건축물, 포스터, 현대의 전시회, 상업광고, 복제생물, 할리우드 영화 등 다양한 이미지의 생명력과 욕망을 밝혀내는, 시각문화 연구의 선구자 W. J. T. 미첼의 역작이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전통적 시각예술에 던지는 시각문화 연구의 도발적 문제 제기
“이미지의 ‘살아 있음’에 주목하라”

“이미지가 전부다” vs. “이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자는 캐논 카메라에서 안드레 애거시를 내세워 찍은 광고(1990년) 슬로건이고, 후자는 코카콜라사의 스프라이트 광고(1998년) 슬로건이다. 이 흥미로운 대립은 우리에게 과연 이미지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선언적으로 회자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제 간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권위 있는 계간지 『크리티컬인콰이어리』(Critical Inquiry)의 편집위원을 1978년부터 줄곧 맡아 왔으며, 국내에도 이미 번역 소개된 『아이코놀로지』를 통해 시각문화 연구의 기틀을 놓은 바 있는 W. J. T. 미첼(W. J. T. Mitchell)은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에서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보는 이미지(그리고 그것의 구현체인 그림)에 그토록 강하게 반응하는가? 왜 우리는 마치 그림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래서 그림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무언가를 요구하고, 우리를...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전통적 시각예술에 던지는 시각문화 연구의 도발적 문제 제기
“이미지의 ‘살아 있음’에 주목하라”

“이미지가 전부다” vs. “이미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전자는 캐논 카메라에서 안드레 애거시를 내세워 찍은 광고(1990년) 슬로건이고, 후자는 코카콜라사의 스프라이트 광고(1998년) 슬로건이다. 이 흥미로운 대립은 우리에게 과연 이미지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선언적으로 회자되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학제 간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의 권위 있는 계간지 『크리티컬인콰이어리』(Critical Inquiry)의 편집위원을 1978년부터 줄곧 맡아 왔으며, 국내에도 이미 번역 소개된 『아이코놀로지』를 통해 시각문화 연구의 기틀을 놓은 바 있는 W. J. T. 미첼(W. J. T. Mitchell)은 『그림은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에서 이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보는 이미지(그리고 그것의 구현체인 그림)에 그토록 강하게 반응하는가? 왜 우리는 마치 그림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래서 그림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무언가를 요구하고, 우리를 설득하고 유혹하며, 심지어 길을 잃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듯 행동할까? (왜 사람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문제작에 과민반응을 할까? 왜 우리는 어머니 사진에서 눈을 도려내는 일을 꺼릴까? 그저 이미지에 불과한 것뿐인데 말이다!) 미첼에 따르면, 이는 그림이 단순히 의미를 전달하는 무기력한 대상이 아니라 ‘생명’을 가지고 인간의 삶에 파장을 일으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각예술, 문학, 대중매체 등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고대의 우상숭배, 비잔티움 성화(聖畵), 공공 건축물, 근대의 회화, 신병모집 포스터, 현대의 전시회, 상업광고, 복제생물, 할리우드 영화 등 다양한 이미지들이 가지고 있는 생명력을 밝혀내고 그림을 보는 색다른 시각을 제공하는 이 책은 2006년 현대언어학협회(MLA)에서 수여하는 제임스러셀로웰상(James Russell Lowell Prize)을 수상함으로써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림을 살아 있는 존재, 욕망을 가진 존재로 새롭게 인식하게 되며, 이는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이미지들에 질식당하거나 포박당하지 않고 우리가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를 사유할 수 있게 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나아가 예술품 자체나 예술경향에 집중하는 기존의 예술이론 담론에 ‘시각성’이라는 근본적 물음을 던지는 ‘시각문화’(visual culture) 분야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욕망을 가진 존재로 다시 태어나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그림’이란 단순히 회화라는 장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사진·영화 등 시각예술 형식 일반에 대한 통칭이자, 우리가 시각을 통해 인지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인공물의 총칭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림을 초월하여 존재/실재/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그림은 우리를 세계와 이어 주는 통로인 것이다.
이러한 그림에 대한 그동안의 일반적인 인식은 관람자라는 ‘주체’의 맞은편에 선 ‘객체’(object)에 불과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 그림의 위치는 격상된다. 미첼에 따르면 ‘그림’이란 어떠한 표상/모티프로서의 ‘이미지’가 캔버스나 물감 같은 물질적 재료인 ‘대상’을 만나 만들어지는 것이며, 여기에 덧붙는 창작·수집·전시·비평·재생산과 같은 ‘매체’적 행위들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 책의 세 개의 부는 이를 따라 이미지, 대상, 매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이러한 그림 개념의 확장은 그림에게 적극적인 행위성과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림에 대한 활유법적 비유(예컨대 “살아 있는 듯한 그림”, “생생한 현실감”과 같은 표현)는 유서 깊은 것이지만, 그림을 ‘살아 있는 실체’로 다룬다는 것은 이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그 핵심은 그림이 인간의 감정과 세계의 현실에 행위자로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사용가치를 넘어선 이미지의 ‘잉여가치’ 때문인데(4장 참조), 세계무역센터는 단순한 마천루가 아닌 ‘자본주의의 아이콘’이었기 때문에 공격받았고, 복제양 돌리는 일개 복제생물이 아닌 ‘신에 대한 도전의 표상’이었기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팔레스타인이나 코소보 같은 ‘성지’를 둘러싼 전쟁 역시 실제로는 이미지에 대한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수많은 그림들이 우리 곁에서 어떻게 살아 숨 쉬고 있는지, 그 삶 속에 어떤 욕망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건네고 있는지를 탐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림에 대한 이러한 태도를 견지할 때 우리는 그림을 공포와 초월의 대상도 아니고 무시와 폄하의 대상도 아닌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이미지/그림을 미신적 태도나 논리적 강박관념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실체적 생명력과 욕망을 인정하는 가운데 주의 깊게―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리굽쇠로 섬세하게 두드려 보듯이’―관찰해야 한다는 것이 미첼의 주장이다. 우리가 이미지를 이러한 방식으로 볼 때, 이미지는 “우리가 생각하고 보고 꿈꾸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이미지는 우리의 기억과 상상력을 재기능하게 하면서 새로운 기준과 새로운 욕망을 세상에 들여온다”(139쪽).

고대의 우상부터 바이오사이버네틱 시대의 새로운 예술까지!

미첼이 동원하는 이미지의 목록과 끌어오는 논의들은 그야말로 방대하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마라”라는 십계명의 제2계명은 이미지의 힘과 사람들이 그에 대해 보이는 반응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인지를 보여 준다. 신도 아닌 신의 재현물(성상이나 상화)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것들의 파괴에 분노하는 이들은 과연 신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인가?
“욕망을 가장 잘 분석하도록 갖추어진 담론이 오히려 그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을 내켜 하지 않는다”(106쪽)며 정신분석학의 난점을 비판하기도 하고, 레비-스트로스와 뒤르켐을 빌려 우상숭배, 페티시즘, 토테미즘의 욕망 구조와 삼자관계를 분석하기도 한다. 신성모독, 정치적 불순함, 음란함 등의 이유로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는 이미지들의 면면을 살펴보는가 하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나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같은 서양 명화들이 관객에게 어떻게 말을 거는지를 짚어 본다. 이 책에는 이 외에도, 난해하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해 줄 만한 ‘친밀한’ 추상화들, ‘조각의 장소성’을 잘 보여 주는 영국 조각가 앤터니 곰리(Antony Gormley), 미국 사진계의 정전(正典)이 된 사진집 『미국인들』의 작가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이미지와 고정관념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재치 있게 녹여낸 스파이크 리 감독의 영화 <뱀부즐리드>(Bamboozled) 등 다양한 인물과 작품들이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컬러 화보를 포함한 100여 장의 도판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 방대한 목록들 속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미래의 예술형식’에 대한 미첼의 통찰이다. 유전자에 직접 변형을 가할 수 있게 된, 따라서 인간이 직접 유기체-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바이오사이버네틱스의 시대에 예술형식은 어떻게 진화해 나갈 것인가? 미첼은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패러디한 제목의 글 ?바이오사이버네틱 시대의 예술작품?(15장)에서 예술과 과학이 결합된 ‘미래의 그림들’을 논하고 있다. 토끼와 해파리의 유전자를 접합하여 ‘형광 토끼’를 만들려는 계획, 웹사이트 방문객 수에 따라 돌연변이 미생물이 자라나게 하려는 아이디어, 자신의 몸에 기계 팔을 하나 더 달아 관람객들에게 조종시키는 행위예술가, “과일과 야채를 미소 짓는 얼굴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스마일 토마토> 등은 시각예술의 새로운 형식에 관한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동시에 ‘포스트휴먼’ 시대의 삶과 윤리를 고민케 해준다.

그림을 보는 새로운 눈, 이제 시각문화 연구에 주목하라!

이 모든 분석들은 우리로 하여금 ‘시각’(vision) 자체에 주목하게 한다.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시각적이기 때문이다. 미첼은 시각예술에 대한 이론을 사이좋게 양분하고 있는 ‘미학’과 ‘미술사’의 강고한 카르텔 속에서 이 분야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시각성’을 고민함으로써 ‘시각문화’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미첼은 말한다. “미술사가 시각 이미지에 대한 것이고 미학이 감각에 대한 것이라면, 시각성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빛, 광학, 시각기관과 시각적 경험, 지각기관으로서 눈, 시각적 충동 등의 문제들을 둘러싸고 미학과 미술사를 연결시키는 하위분과를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486쪽).
미첼은 일견 추상적으로 보이는 시각문화를 설명하기 위한 자신의 교수법적 실천 방법을 공개한다. 시카고대학에서 근 10년간 ‘시각문화’ 과목을 가르쳐 온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보기를 보여 주기’(Showing seeing)라는 발표를 요청하는데, 이는 시각문화라는 개념이 전혀 없는 사회를 방문한 학자가 되어 그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시각이라는 것을 설명하도록 하는 퍼포먼스다. 학생들은 선글라스·창문·쌍안경·거울·카메라 등의 소품과 화장하기·마임·옷 바꿔 입기 등의 행동을 통해 ‘시각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하면서 시각의 자명성을 의심하고 그것의 사회적 맥락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시각이란 무엇인가, 매체란 무엇인가, 시각과 언어의 관계는 무엇인가, 시각적 만남은 어떻게 사회적 삶의 구성을 특징짓는가 등에 관한 포괄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각문화는 여전히 많은 편견과 오해에 둘러싸여 있다. 시각문화가 종래의 미술을 위협한다든가, 예술의 역사를 이미지의 역사로 한정시켜 버린다든가, 예술에 있어서 시각의 특권에 대해 무반성적이라든가 하는 테제들이 미학과 미술사를 비롯한 다른 분야의 논평자들로부터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미첼은 이러한 테제들을 조목조목 비판하며, ‘시각성’에 천착하는 자신의 주장을 더욱더 단단히 다져 나간다(491~506쪽). 기존의 경직된 학제에 대한 시각문화의 이러한 도전은 그림, 나아가 예술을 보는 우리의 태도를 재구성하고 우리 삶의 양식들을 재편성하는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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