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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이란 무엇인가

Kant, Im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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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계몽이란 무엇인가 / 이마누엘 칸트 외 지음 ; 임홍배 옮김
개인저자Kant, Immanuel,1724-1804
임홍배
발행사항서울 : 길, 2020
형태사항276 p. ; 23 cm
원서명Beantwortung der Frage :Was ist Aufklärung?
ISBN9788964452288
서지주기참고문헌: p. 275-276
기금정보주기이 책의 출판은 2016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인문학 총서 출간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았음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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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매체정보
1 00012128640 193 K135b 020가 [신촌]도서관/인문자료실(중도2층)/ 대출가능
2 00071070652 UML 193 K135b 020가 [국제]언더우드기념도서관/자료열람실(5층)/ 대출가능

책 소개

지금은 21세기, “계몽”은 유럽의 16~18세기와 우리의 개화기.식민지 시대에 유행했던 낡아빠진 유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은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던 칸트가 처음으로 “계몽”에 대한 정의를 제시했던 시점으로 돌아가본다.

18세기 당시 “계몽”은 시대정신을 집약하는 첨예한 화두였다. 그리고 “계몽”에 관한 생각은 그때도 역시 매우 복잡다기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칸트가 써낸 것이 바로 1784년에 발표한 그 유명한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이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18세기 말 프로이센의 계몽 논쟁에서
칸트가 제시했던 계몽의 정의
그 고전적 정의는 지금도 유효하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엄밀히 정의하자.”
“과감히 알려고 하라!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슬로건이다!”

계몽인가 무엇인가. 근대는 계몽과 함께 전개되어 왔다. “16~18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 구시대의 인습과 제도를 타파하고자 한 혁신적 사상과 운동”이었던 계몽주의/계몽운동은 식민지 국가들에서도 독립투쟁과 민족해방 운동의 동력이 될 만큼 근대 전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우리에게도 계몽의 시대가 있었고, 언문일치 운동과 국채보상 운동 등이 그 핵심이었다.)
지금은 21세기, “계몽”은 유럽의 16~18세기와 우리의 개화기・식민지 시대에 유행했던 낡아빠진 유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은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던 칸트가 처음으로 “계몽”에 대한 정의를 제시했던 시점으로 돌아가본다. 18세기 당시 “계몽”은 시대정신을 집약하는 첨예한 화두였다. 그리고 “계몽”에 관한 생각은 그때도 역시 매우 복잡다기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18세기 말 프로이센의 계몽 논쟁에서
칸트가 제시했던 계몽의 정의
그 고전적 정의는 지금도 유효하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를 엄밀히 정의하자.”
“과감히 알려고 하라!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슬로건이다!”

계몽인가 무엇인가. 근대는 계몽과 함께 전개되어 왔다. “16~18세기에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 구시대의 인습과 제도를 타파하고자 한 혁신적 사상과 운동”이었던 계몽주의/계몽운동은 식민지 국가들에서도 독립투쟁과 민족해방 운동의 동력이 될 만큼 근대 전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해왔다.(우리에게도 계몽의 시대가 있었고, 언문일치 운동과 국채보상 운동 등이 그 핵심이었다.)
지금은 21세기, “계몽”은 유럽의 16~18세기와 우리의 개화기・식민지 시대에 유행했던 낡아빠진 유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이 책은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던 칸트가 처음으로 “계몽”에 대한 정의를 제시했던 시점으로 돌아가본다. 18세기 당시 “계몽”은 시대정신을 집약하는 첨예한 화두였다. 그리고 “계몽”에 관한 생각은 그때도 역시 매우 복잡다기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칸트가 써낸 것이 바로 1784년에 발표한 그 유명한 에세이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이다.

18세기 계몽 개념을 둘러싼 논쟁의 시작과 주요 쟁점

이 책은 칸트의 에세이를 포함해 계몽을 정의하고 또 제대로 실현하고자 치열하게 논쟁하고 고민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글 16편을 골라 엮은 것이다.
1783년부터 1798년까지 프로이센의 지식인들이 매달 첫째, 둘째 주에 회원들의 자택에서 비공개 토론모임을 가졌다. ‘계몽의 벗들’이라는 이름의 이 모임은 열두 명의 회원으로 구성되었고, 모이는 날이 수요일로 정해져 있어서 일명 ‘수요회’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들이 주축이 되어 《베를린 월간 학보》라는 잡지를 간행했고, 이 매체는 모임의 토론 주제인 계몽에 관한 논의를 주도했다. 회원 중에는 프로이센의 재무장관, 국법을 기초한 법학자, 왕의 주치의, 출판인, 신학자, 왕립극장장, 교육부 장관 등이 있었다. ‘계몽의 벗들’과 그들의 기관지 격인 《베를린 월간 학보》는 계몽 군주를 자임한 프리드리히 대왕의 신임이 두터운 고위 관료와 학자들이 계몽에 관한 토론과 계몽사상의 전파를 선도한 구심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모임과 매체의 성격에 비추어볼 때 그들이 주창한 계몽 담론은 소수의 지식인이 주도한 ‘위로부터의 계몽’의 성격을 띤다고 추정할 수 있다
국립국어원의 사전에서는 “계몽”을 이렇게 정의한다. “계몽(啓蒙): 지식 수준이 낮거나 인습에 젖은 사람을 가르쳐서 깨우침.” 이 풀이를 보면, 한국어에서도 계몽이란 먼저 깨우친 (잘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을 이끌어 깨닫게 만드는 것, 역시 ‘위로부터의 가르침’을 의미하는 듯싶다. 그러나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칸트가 생각한 계몽 개념은 원칙적으로 ‘위로부터의 계몽’을 배제한다.
《베를린 월간 학보》에서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토론이 시작된 직접적인 계기는 전통적인 교회결혼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었다. 교회에서 치르는 혼례성사는 번잡한 허례허식이므로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결혼은 신성하므로 교회의 축복을 받아야 하고, 이를 통해 풍기문란과 도덕적 타락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똑같이 ‘계몽’의 이름으로 제기된 것이다. 이에 쵤너는 ‘계몽’의 이름으로 야기되는 혼란을 비판하면서 무엇보다 계몽에 대한 분명한 개념 규정이 절실하다고 역설했다. “계몽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계몽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이 문제에 답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논쟁에서 많은 글들이 생산되었는데, 우선 이 책의 제1부에서는 계몽 개념의 정의를 시도한 대표적인 글들을 소개하고자 했다. 그런데 계몽은 단지 개념적 정의의 차원에 국한되지 않고 국민대중의 이성적 각성을 추구하는 실천적 과제와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계몽사상을 전파하기 위해서는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제2부에서는 이런 맥락에서 사상과 언론의 자유를 논한 대표적인 글들을 수록하였다. 다른 한편 진취적인 이성적 각성과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계몽정신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이후 혁명의 문제와 연동되는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제3부에서는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계몽과 혁명의 상관성을 논한 대표적인 글들을 수록하였다.

자율적 주체 형성의 요청과 과정이 곧 계몽이다

칸트의 「계몽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은 1784년 12월 《베를린 월간 학보》에 발표되었다. 이 글은 곧장 계몽 개념을 정의하면서 시작한다.

계몽이란 인간이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년 상태란 다른 사람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수 없는 무능력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미성년 상태가 지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지도를 받지 않고서 지성을 사용할 결단력과 결핍 때문이라면 미성년 상태는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것이다. 과감히 알려고 하라! 자기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것이 계몽의 슬로건이다.
우선 칸트가 ‘계몽되지 않은 상태’를 ‘미성년 상태’에 비유하는 것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성년은 부모나 친권자의 동의 없이는 온전한 인간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또한 미성년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책임지지 못한다. 요컨대 미성년 상태란 오로지 타인의 지도와 감독, 보호와 후견에만 의존하고 자율적 주권과 책임을 포기한 예속 상태를 가리킨다. 그러한 예속 상태를 극복하고 자신을 스스로의 주인으로 만들어가는 자율적 주체 형성의 요청과 과정이 곧 계몽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성년 상태인 것이 지적 능력이나 지식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려는 결단과 용기의 부족 때문이며, 그런 한에는 미성년 상태가 ‘스스로의 잘못으로 초래한’ 자기 책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선각자가 무지한 대중을 각성케 하고 지식을 전파하는 것을 계몽이라 여기는 통념을 허물어뜨리는 발상의 전환이다. 단지 무지를 타파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그런 통념적 계몽관은 ‘문외한’과 ‘전문가’의 구별을 전제하고 ‘전문가’가 ‘문외한’을 인도하는 것을 계몽의 과제로 설정한다.
칸트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스스로 사고하려는 시도에서 지식의 많고 적음이 문제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칸트에 따르면 심지어 아무리 풍부한 지식을 갖춘 사람도 지식의 활용 면에서는 오히려 가장 계몽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 지식의 활용 면에서 오히려 가장 계몽되지 않은 경우란, 예컨대 단지 외부의 강압이나 권위에 무조건 순응하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지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지식이 많을수록 오히려 그런 유혹에 빠질 공산도 크기 마련이다. 그처럼 보편타당한 이성적 원칙에 위배되는 지식의 사용을 칸트는 ‘미신’과 ‘맹신’이라 비판한다.
그러나 근대 이래 체계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고 타인의 권위와 도움에 의존해 삶을 유지해 나가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타인의 권위에 의존하는 ‘게으름’에 못지않게 그런 비주체적 삶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도록 조장하는 사회체계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개인은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성을 공적으로 자유롭게 사용하라

칸트는 고립된 개인과 달리 ‘공중’(公衆)은 스스로를 계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공중’(Publikum) 개념은 18세기에 들어와 서적 보급의 급속한 확대로 광범위하게 형성된 독자층을 가리키며, 나아가 그들이 의견을 개진하면서 여론을 형성해 나가는 공동체 내지 ‘공론장’의 의미까지 포괄한다. 그런 공론장에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미성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발언하고, 이를 통해 계몽의 정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로써 칸트는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계몽의 필수적 요건으로 설정하고 있다. 칸트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성의 ‘공적’ 사용이다.

자신의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누군가가 학자의 입장에서 독서계의 모든 공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성을 사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성의 사적 사용이란 자신에게 맡겨진 시민적 직책 또는 관직의 범위 안에서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칸트가 말하는 이성의 ‘공적’ 사용과 ‘사적’ 사용이라는 개념 구별은 칸트 당대와 오늘날의 일반적인 어법이 충돌한다. 국가에 봉사하는 ‘관직’의 의무에 합당하게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이성의 ‘사적’ 사용이라 일컫고, 반면 그런 관직의 의무에서 벗어나 단지 ‘식자’의 한 사람으로서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개진하는 것을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 일컫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적’이라는 말은 이성의 ‘보편타당한’ 사용과 대비되는 ‘특수한 기능적’ 사용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이성의 ‘사적’ 사용은 도구적 이성을 가리킨다.
예컨대 성직자는 자신이 속한 교회의 공식 교의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강론을 해야 한다. 장교는 상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며 명령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다. 그리고 시민 개개인은 자신에게 부과된 세금을 반드시 납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의 사적 사용은 ‘아주 협소하게 제한되어도’ 무방하다. 그렇지만 성직자도 ‘학자’의 입장에 서면 자신의 교회가 표방하는 교의에 내재하는 문제점을 독자 대중 앞에 공공연히 발표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장교 역시 ‘학자’의 입장에 설 때는 병역 의무의 문제점에 관해 공개적으로 발언할 수 있다. 시민 역시 ‘학자’의 입장에 서면 현행 조세제도의 문제점에 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학자’의 입장이 바로 이성을 ‘공적’으로 사용하는 태도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성을 사용해 무엇이든 비판할 수 있는 공론장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탈예속의 비판적 사유

계몽의 세기라 일컬어지는 18세기 당대의 계몽사상에서 흔히 고루한 편견의 타파나 지식의 보급을 계몽의 과제로 설정한 것과 달리 칸트는 타인의 인도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할 용기를 가지라고 촉구함으로써 ‘계몽에 관한 계몽’을 수행했다. 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율의 원리를 근간으로 삼기 때문에, ‘위로부터의 계몽’은 원칙적으로 계몽의 정신에 위배된다. 심지어 문외한이 전문가의 권위에 무조건 의존하고 따르는 것도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권위에 예속시키는 것이기에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고 ‘미성년 상태’를 온존시키는 것이다. 지식이나 권력에 의해 타인의 권위에 예속된 ‘미성년 상태’를 감내하는 것은 후견인들이 길들이고 부리는 ‘온순한 가축’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또한 권력자들이 관리하고 조종하는 ‘기계의 부품’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미성년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계몽적 자각은 곧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혁명”이다.
칸트의 계몽사상에서 이성의 공적 사용 개념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와 직결된다. 이성의 공적 사용은 소수 학자들 사이의 토론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형성하여 참여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룬다. 그러한 공론장에서 국민의 의사가 모여 입법의 기초가 되며, 따라서 모든 입법은 공적 이성의 검증을 통해 비로소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공론장에서 이루어지는 의견 수렴과 합의 과정은 단일한 견해나 신념을 만장일치로 관철하려는 목표를 추구하지는 않으며, 소수 의견도 존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성의 공적 사용은 전체주의를 배격하며 다양성의 공존을 지향하는 다원적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한다.
자율적 주체와 공론장의 형성을 지향하는 칸트의 계몽사상은 현대 정치철학의 민주주의 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그 중요성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은이 소개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서양 근대철학의 경험론과 합리론을 비판적으로 종합하여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는다. 3대 비판서라 일컬어지는 『순수이성 비판』(1781), 『실천이성 비판』(1788), 『판단력 비판』(1790)을 남겼다. 자율적 주체와 공론장의 형성을 지향하는 칸트의 계몽사상은 현대 정치철학의 민주주의 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요한 카를 빌헬름 뫼젠(Johann Karl Wilhelm Möhsen, 1722~95)은 프리드리히 2세의 주치의를 지낸 의사로 계몽주의자들의 단체인 베를린 수요회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모제스 멘델스존(Moses Mendelssohn, 1729~86)은 라이프니츠의 사상을 대중화한 계몽철학자로 이 책에 수록된 계몽에 관한 논의를 촉발하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크리스토프 마르틴 빌란트(Christoph Martin Wieland, 1733~1813)는 문학·학술·정치 등 다양한 분야를 다룬 비평가 겸 소설가이자 셰익스피어를 완역한 번역가로 유명하다.
•카를 프리드리히 바르트(Carl Friedrich Bahrdt, 1740~92)는 정통 기독교 교리를 계몽적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한 진보적 신학자로 프로이센의 검열정책을 비판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요한 게오르크 하만(Johann Georg Hamann, 1730~88)은 계몽사상의 이성 중심주의에 맞서 감성의 복권을 주창한 슈투름 운트 드랑(Sturm und Drang) 문학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에른스트 페르디난트 클라인(Ernst Ferdinand Klein, 1774~1810)은 프로이센 민법과 형법의 제정을 주도한 법률가이자 계몽사상가로 프로이센 왕실 법률 고문관을 지냈다.
•프리드리히 카를 폰 모저(Friedrich Karl von Moser, 1723~98)는 온건한 진보적 개혁을 옹호한 관료이자 법학자로 헤센공국의 수석장관과 재상을 지냈다.
•요한 고트프리트 팔(Johann Gottfried Pahl, 1768~1839)은 언론 자유를 옹호한 진보적 개신교 신학자로 교구 총감독을 지냈다.
•요한 고틀리프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는 계시종교를 비판하고 공화주의를 옹호한 철학자로 이 책에 실린 글에서도 언론 자유를 양도 불가능한 기본권으로 옹호한다.
•안드레아스 림(Andreas Riem, 1749~1814)은 개신교 신학자로 베를린 프리드리히 병원의 목사를 지내다가 프로이센 당국의 종교칙령과 검열정책을 비판해서 프로이센에서 추방당했다.
•요한 하인리히 티프트룽크(Johann Heinrich Tieftrunk, 1760~1837)는 칸트 철학의 계승자로 칸트의 저서를 최초로 편찬했으며 진보적 개혁을 옹호한 계몽 사상가였다.
•요한 벤야민 에르하르트(Johann Benjamin Erhard, 1766~1827)는 원래 의사로 프랑스 혁명을 열렬히 옹호하고 자코뱅주의를 지지했으며 민중의 혁명이 정당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요한 아담 베르크(Johann Adam Bergk, 1769~1834)는 칸트 철학을 계승한 진보적 재야 학자로 국민의 보편의지와 정의로운 각성에 바탕을 둔 민중혁명의 정당성을 옹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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