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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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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 우리는 양동에 삽니다 /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지음
단체저자명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
발행사항서울 : 후마니타스, 2021
형태사항318 p. : 삽화 ; 22 cm
ISBN9788964373910
기금정보주기이 책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1년 인문 교육 콘텐츠 개발 지원' 사업을 통해 발간된 도서임
언어한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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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등록번호 청구기호 소장처 도서상태 반납예정일 예약 매체정보
1 00012157157 305.5692 021가 [신촌]도서관/인문자료실 서비스 데스크(중도2층)/지정도서 지정도서

책 소개

서울역과 힐튼호텔 사이에 위치한 ‘양동 쪽방촌’ 주민 8인의 이야기를,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듣고 적었다. 홈리스 야학 교사나 자원 활동가로서 오랜 기간 쪽방촌 주민들을 만나 온 기록팀은 2020년 10월부터 1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쪽방 주민들의 “스스로 말하기”를 돕고 기록했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배고픔과 가정폭력, 미래가 없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무작정 상경”한 이들은 끝없는 노동에도 불구하고 방 한 칸 구할 여력이 없어 거리와 쪽방을 오가는 생활을 해온 ‘가난의 굴레’를 증언한다. 또 이들의 가난을 이용해 돈을 버는 복지시설과 정신병원 등의 부정부패와 각종 명의 도용 범죄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로서의 삶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은 우리 사회 복지체계의 현 주소를 다시 묻게 한다. 책의 말미에는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와 해피인 서울역 신종호 위원장의 인터뷰를 더해 쪽방촌 사람들의 애환을 곁에서 지켜온 이들의 관점에서 살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출판사 제공 책소개 일부

가난한 나의 이름으로 ‘내 삶’과 ‘내 집’을 말하다

서울역과 힐튼호텔 사이에 위치한 ‘양동 쪽방촌’ 주민 8인의 이야기를,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듣고 적었다. 홈리스 야학 교사나 자원 활동가로서 오랜 기간 쪽방촌 주민들을 만나 온 기록팀은 2020년 10월부터 1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쪽방 주민들의 “스스로 말하기”를 돕고 기록했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배고픔과 가정폭력, 미래가 없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무작정 상경”한 이들은 끝없는 노동에도 불구하고 방 한 칸 구할 여력이 없어 거리와 쪽방을 오가는 생활을 해온 ‘가난의 굴레’를 증언한다. 또 이들의 가난을 이용해 돈을 버는 복지시설과 정신병원 등의 부정부패와 각종 명의 도용 범죄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로서의 삶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은 우리 사회 복지체계의 현 주소를 다시 묻게 한다.
책의 말미에는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와 해피인 서울역 신종호 위원장의 인터뷰를 더해 쪽방촌 사람들의 애환을 곁에서 지켜온 이들의 관점에서 살폈다.

✤ 가난한 나의 이름으로 ‘내 삶’을 말하다 : 끝없이 일해도 가난한 삶
‘양동 ...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체

가난한 나의 이름으로 ‘내 삶’과 ‘내 집’을 말하다

서울역과 힐튼호텔 사이에 위치한 ‘양동 쪽방촌’ 주민 8인의 이야기를, 홈리스행동 생애사 기록팀이 듣고 적었다. 홈리스 야학 교사나 자원 활동가로서 오랜 기간 쪽방촌 주민들을 만나 온 기록팀은 2020년 10월부터 1년에 걸친 인터뷰를 통해 쪽방 주민들의 “스스로 말하기”를 돕고 기록했다. “없는 집”에서 태어나 배고픔과 가정폭력, 미래가 없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무작정 상경”한 이들은 끝없는 노동에도 불구하고 방 한 칸 구할 여력이 없어 거리와 쪽방을 오가는 생활을 해온 ‘가난의 굴레’를 증언한다. 또 이들의 가난을 이용해 돈을 버는 복지시설과 정신병원 등의 부정부패와 각종 명의 도용 범죄들, 그리고 기초생활수급자로서의 삶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은 우리 사회 복지체계의 현 주소를 다시 묻게 한다.
책의 말미에는 홈리스행동 이동현 활동가와 해피인 서울역 신종호 위원장의 인터뷰를 더해 쪽방촌 사람들의 애환을 곁에서 지켜온 이들의 관점에서 살폈다.

✤ 가난한 나의 이름으로 ‘내 삶’을 말하다 : 끝없이 일해도 가난한 삶
‘양동 쪽방’을 공통분모로 모인 이 책의 주인공들은 쪽방뿐만 아니라 여인숙과 고시원, 거리와 병원 등을 오가며 생활해 온 이들이다. 이토록 가난한 이들에 대한 세간의 관념은 ‘무능한 사람’ ‘게을러서 스스로의 생계조차 꾸리지 못하거나 자포자기한 채 살아가는 사람’ ‘국가가 주는 수급비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출생부터 빈곤했던 이들은 대부분이 배고픔과 폭력, 미래가 없는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무작정 상경”한 평범한 ‘시골 사람들’로 무일푼으로 시작된 이들의 서울살이는 끝없는 밑바닥 노동 이력들로 점철돼 있다(거리 생활을 오래 했던 김강태 역시 노숙을 하면서도 양계장, 돼지 농장 등을 오가며 끊임없이 일해 온 삶을 보여 준다). 넝마주이, 머슴살이, 새우잡이 배, 염전, 양계장, 돼지 농장, 각종 건설 현장을 전전하며 도로와 빌딩, 댐과 발전소를 짓고 달걀과 돼지, 새우와 소금을 밥상 위에 올려준 이들이 지금은 쪽방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화자 중 장용철은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번 돈으로는 서울 도심에서 비적정 주거나 거리를 떠돌며 하루살이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말한다. 게다가 (중국집 배달원에서 사장이 되어) 가난의 궤도에서 벗어날 뻔한 문형국조차 IMF의 여파로 다시 일용직 인생으로 추락하는 모습이나 실직과 IMF 위기가 겹쳐 한순간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김강태의 삶은 “가진 건 몸뿐인” 이들에게 우리 사회가 제공하는 안전장치는 과연 무엇이었는지 되묻게 한다.
지금도 쪽방촌에서 말년을 살고 있는 이들은 모두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 70킬로그램에 달하는 폐지를 줍거나 “새벽부터 남대문 인력 시장”에 나가 일거리를 찾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로서 받는 돈 75만 원에서 25만 원의 월세를 내고 남는 돈으로는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 가난한 나의 이름으로 ‘내 집’을 말하다
한 평 남짓 쪽방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주방은 물론 화장실조차 공동으로 사용하고, 냉난방은 물론 온수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쪽방에서 주민들은 대개가 목욕은 상담소에서 하고, 식사는 무료 급식소를 이용하거나 나눠 주는 도시락을 데워 먹는 정도다. 그런데도 월세는 현재 25만 원선. 전기요금은 월세에 포함돼 있지만 밥솥 하나라도 더 갖다 놓을라 치면 전기세를 더 내야 할 정도로 ‘관리’는 철저하다(물론 기반 시설에 대한 관리는 거의 하지 않아서 문형국은 몇 년간 망가진 공용 세탁기를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이고, 부실한 시설에서 아픈 몸이 부상을 입어 요양병원행을 앞당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쪽방 주민 대부분은 오랜 노숙 생활 끝에 몸이 망가져 정착하거나 단순 일용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도심에서 가장 값싼 거처를 찾아 들어온 경우에 해당한다. 재개발로 밀려나 쪽방촌을 전전해 온 이들도 상당수다(강성호는 3년간 쪽방촌 내에서만 이사를 다섯 번 했고, 장영철은 후암동 쪽방에서 쫓겨나 양동에 왔으며, 김기철 역시 중림동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하지만 사실 이들이 지불하는 월세는 타워팰리스의 평당 월세보다 높을 정도로 결코 싸지 않으며, 월 수급비 75만 원의 3분의 1에 달할 정도로 큰 부담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은 이런 부담을 감수하고서라도 한사코 양동에 남고 싶다고 말한다. 왜일까? 노년을 맞은 기초생활수급자가 굳이 도심에 남으려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내 사회적 관계가 있는 정든 ‘내 집’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가난한 이들일수록 도심에 거주하려 하는 이유는 그곳이 이들이 당장 ‘내일’이나마 그릴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남대문 일당 소개소가 가까이 있고, 지방보다 수급비를 조금이라도 더 받을 수 있으며, 병원이나 일자리로 이동하는 데 드는 교통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동 재개발이 확정된 이후 현재 주민의 절반이 이주한 상태다. 대부분은 강제 퇴거가 이루어지면서 법적으로 보장된 이사비나 주거 이전비도 받지 못하고 나갔다.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 빈곤 비즈니스 ver. 2021 / 가난한 자들을 이용해 누가 돈을 버는 이들은 누구인가
쪽방촌 집주인들이 대부분 강남에 거주하고 있는 건물주들이며 가난한 이들의 수급비에서 3분의 1에 달하는 액수를 월세로 받아가면서 장사를 하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재개발이 확정된 양동 쪽방촌은 현재 부동산 개발회사들이 건물을 사들이고 주민들을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주거 안정성은 훨씬 더 위협받고 있다. 재개발시 세입자에게 보장되는 주거 이전비와 이사비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없애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들의 가난을 갉아 먹는 ‘비즈니스’는 이뿐만이 아니다. 거리 노숙을 경험한 이 책의 화자들은 하나같이 서울역에 있다가 요양병원이나 정신병원으로 유인당해 입원한 경험을 증언한다. 입원 환자 수를 늘림으로써 병원은 의료 급여를 탈 수 있고, 또 이들이 수급자가 될 경우 그 수급비까지 병원에 귀속되기 때문. 또 몇몇의 증언에서는 수급비를 착복하고 무임 노동을 시키는 복지 시설의 부정부패도 드러난다.
게다가 이 책의 화자들은 대부분이 명의 범죄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정보 부족이나 판단 미숙으로 돈 몇 푼에 신분증을 내줬다가 명의 범죄의 피해자가 아닌 공범이 되어 감옥살이도 하고 듣도 보도 못한 채무를 죽을 때까지 짊어지고 다니며 수급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물론 그 뒤엔 이들의 ‘못배움’과 ‘어리숙함’을 이용하는 범죄 집단이 있는 것이지만, 그 배경에는 카드 발급을 남발한 국가의 금융정책과 핸드폰 구입을 강권한 정보통신 정책이 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 복지제도의 허와 실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길은 쪽방촌 주민들에겐 ‘구원’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의 가시밭길이기도 하다. 우선은 ‘가난을 증명하는’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신청이 불가능할 정도다. 대부분은 유인입원당한 병원이나 속아서 끌려간 복지시설에서 수급자가 되거나, 노동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린 몸을 이끌고 구청의 복지사나 상담소 직원, 활동가들 앞에 나타나야 수급을 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자신의 빈곤과 가족의 해체를 증빙하고, 이를 위한 온갖 서류와 모멸감을 견디고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고 나서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있는 것.
게다가 고난은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수급자들은 수급 이후에도 자신의 노동을 ‘들켜서는’ 안 된다. 소득이 잡히면 수급비에서 차감되기 때문. ‘부정’ 수급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쪽방 주민들은 “몰래” 파지를 줍고, “산재도 기본급도” 보장받지 못하는 더 음지의 일에 내몰린다.

✤ 함께, 곁을 지키는 사람들
가난은 이 책의 화자들을 (‘가족’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회적 관계로부터 단절시켰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곁을 함께한’ 사람들이 있다. (술친구가 돼 주거나 무연고자로 사망한 이웃의 공영장례를 함께하는) 쪽방촌의 이웃들, 이들의 수급 선정을 돕고 도시락을 챙기며 안위를 돌보는 활동가와 복지사들이 그들이다. 이 책은 이런 이들의 목소리를 말미에 담아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보다 깊이 들여다본다.
해피인 신종호 위원장의 인터뷰는 매일 새벽 2~3시에 일어나 오전 중에 생업인 배달일을 마치고 오후에는 해피인 활동을 하는 ‘봉사자’의 일상을 보여 주는 한편, 몇 년간 주민들을 만나며 쌓아 온 통찰들을 드러내 준다. “여태껏 많은 상처를 받아 본 사람들”의 마음을 열기 위한 노력과, “혼자 벽 보고 이야기하는” 정신질환을 가진 주민을 좀 더 일찍 찾아보지 못한 후회도 있다. 그는 “끊임없이 성실히 일한 이들이 끊임없이 가난해야 하는 이유”를 되물으며 “우리도 일을 못하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일 수 없는 순간이 올 것”임을 강조한다.
대학 때부터 쭉 도시 빈민의 곁에서 활동해 온, 이 책의 기획자 이동현 활동가는 “양동 주민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남겨야겠다 마음먹으면서” 특히 “양동을 떠난 사람” 이야기를 꼭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지금껏 쪽방 재개발로 이주한 사람들이 옮겨 간 삶들을 보면, “아주 잘해 봐야 수평이동”인데, 그런 이들을 내쫓아 고시원이나 여인숙, 거리로 내모는 재개발에 대해 다시 생각했으면 해서다. 그는 621번지에 살며 집주인 대신 건물을 살뜰히 관리했던 은철 아저씨(지금은 중림동 여인숙에 산다) 같은 “쪽방 주민들이 그동안 마을을 일궈 온 노고와 권리”는 왜 인정되지 않는지 묻는다.
또 노가다로 번 돈이 있는데도 (언제 추락할지 모르는 삶이기 때문에) “감각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면서 주기적으로 노숙을 하러 오는 똥파리 형이나 자신에게 일자리를 준 “이명박”을 찍은 의리파 림보 형 등 20년 넘게 활동해 오면서 만났던 홈리스 ‘친구’들의 사연들 역시 가슴을 울린다.
다른 지역 임대주택으로 갔다가 자살한 동자동 주민의 사례나 양동에 살다 구로에 위치한 임대주택으로 가게 됐지만 전혀 연이 없는 곳에서 고립감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석길 님의 이야기는 쪽방촌 재개발이나 이주 대책이 단순히 물질적으로 더 좋은 집의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사회적 관계와 삶 전체를 들여다봐야 하는 문제임을 웅변한다.

화자 소개

<이석기>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남의집살이를 하다가, 친구랑 서울로 갈 결심을 한다. 친구가 서울로 갈 교통비 마련을 위해 짊어지고 나온 쌀가마 때문에 소년소에 가게 된다. 소년소를 나와서는 구두닦이, 넝마주이 등을 하다 ‘안 되겠다’ 싶어 무작정 상경한 그는 낮에는 파지를 줍고, 밤에는 파지를 실어 나르는 래카에서 자는 삶을 시작한다.
10년 넘게 신안의 염전에서 70만 원에 불과한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하다 경찰의 도움으로 체불임금을 받고 탈출했으나, 그 돈을 모두 고향 형님에게 안겨 주고는 다시 서울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김포의 한 교회에서 기거하다 지금은 양동 쪽방촌에 살고 있다.

“일곱 살 때부터 남의집살이를 했어요. … 열네 살 때 아부지한테 더는 못 하겠다 했어요.
“학교를 안 댕겨서 글씨를 몰라요. 읽는 건 가끔 되는데 쓸 줄은 몰라요.
“그냥 딱 요만큼 살면 돼요.
“내가 생각해도 대단해요, 살아 있는 게. 이제는 방이라도 하나 있으니까 그럴 일 없죠. 그땐 쪽방도 몰랐고 그렇게 살 줄 밖에 몰랐어요.

<문형국>
평생 비정규 일자리를 전전했다. 1970년대엔 시다, 미싱사 일을 하다가 일자리가 없어지면서 “방을 따로 안 구해도 거기서 잘 수 있”는 중국집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중화요릿집 일당을 다니다 삼풍백화점 중국집의 ‘기술자’로 들어가 월급제로 3년간 일하기도 했다. 안산에서 직접 중국집을 운영하면서 “허리띠를 해도 바지가 줄줄 내려갈 만큼” 살이 빠질 정도로 열심히 일했으나 4년 만에 IMF 위기가 닥치면서 장사를 접고 다시 일당을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거기도 건물 주인에게 사장이 쫓겨나면서 그만두게 되었는데, 그걸 보고 “중국집 하나만 해선 안 되겠다 싶어” 도나쓰, 꽈배기 만드는 기술을 익히는 ‘시다’로 들어갔다. 그 기술로 여기저기서 종업원으로 일했으나 “하루 종일 만두, 찐빵, 도나쓰를 혼자서 다” 해야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그만뒀다. 다시 중국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주방장 일을 했으나 손가락이 부어 요리사 가운의 단추조차 채우지 못하게 되면서 수급을 만들고 양동 쪽방촌에 자리를 잡았다. 부인과 아들은 안산에 따로 살고 있으며 “가끔 보기야 보지만 서로 별말 안” 하고 살고 있다.

“남대문 중국집 배달로 시작해서 싸완, 칼판, 주방장까지 다 해봤제. … 그러다가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질 못하겠는 거여. 일 나가려면 가운을 입어야 하는데 손가락이 이만큼 부어서 단추도 못 잠그는 거여. … 중국집 후라이팬이 이렇게 무거워. 그래서 이렇게 됐지. 인생이 변한 게. … 그 길로 수급 만들고 이 방에 온 거여.
“서울 오면 돈 버는 줄 알고 시골에서 죄다 올라왔으니까. 나도 그랬지.
“잠이야 뭐, 양동에서 만난 친구 하나랑 하루하루 방세 주고 살기도 하고, 중국집에서 그릇 닦으면서 가게 2층 다락에서 자고 그랬지.

<김강태>
해군 입대를 계기로 14년간 외항선 생활을 했다. IMF 직후 아버지의 죽음, 가족의 배신이 겹치면서 빈손으로 서울역으로 올라와 거리 생활을 시작했다. “누울 자리”를 찾아 장애인 시설, 돼지 농장, 양계장, 재활용 수거 등을 전전하면서도 오랫동안 거리 생활을 청산하지 않았다. 그는 서울역에서 만난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돌아가면서 일을 하고 술을 나눠 먹었던 ‘품앗이’ 같은 문화를 들려주기도 한다.
양동 쪽방에 살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지금은 해피인에 상주하며 성경도 필사하고, “서울역 아는 형들”이랑 만나기도 하면서 산다. 좁은 쪽방에서도 1400원 주고 산 7킬로 정부미로 요리를 해먹고, 해피인 사무실을 쓸고 닦고 꾸미는 살림꾼이기도 하다.

“ 배타고 나서는 더는 돈 벌기가 싫대요. 그러니까 형제들한테 ‘저 미친놈이다’ 소리 들었죠.
“이제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산다고 맨 마지막에 적어 줘요

<이양순>
화자 중 유일한 여성이며 같이 사는 동거인이 있는 경우다. 본인도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고 열아홉에 역시 장애인인 남편과 결혼했으나 폭력에 시달리며 9년을 살다 도망쳐 나와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을 시작했다. 이때 만난 (중국집 주방장을 하던) 아저씨와 살림을 꾸려 여러 쪽방촌을 전전하며 살다 양동에 정착했다. 지금 현재는 이양순의 수급비로 둘이 생활하고 있다(수급비는 모두 아저씨가 관리하고 양순은 대신 아저씨로부터 5만원씩 용돈을 받는다). “우리 아저씨”는 “대구 사람이라 말이 딱딱”하지만 이양순의 아픈 몸을 돌보고 요리를 해주는 어엿한 ‘보호자’다. 이양순은 아저씨와 혼인 신고는 안 했지만 “둘이서 자기에 좁지 않은” “조금 넓은” 쪽방에서 “아저씨랑 둘이 있는 게” 좋다. (다리가 아파 자주 다니진 못하지만) 남대문 시장 구경을 좋아하고 심심할 땐 노인정에 가서 “노인회장 마누라”와 텔레비전을 보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보면 바로 손을 걷어붙인다.

“서울에 왔을 땐 서울역 지하도에 있었어. 새벽에 내리니까 아무도 없었어. 의자에서 잤는데 춥더라고. 거기서 자면서 내 신발 많이 잃어 먹었어. 잃어버리면 다음 날엔 맨발로 다녔지, 뭐. 서울역 변소에 가면 물 있으니까 거기 가서 씻고.
“20일마다 아저씨한테 5만 원씩 받아. 째깐해도 고맙지 뭐. 수급비 나오는 걸로 반찬 같은 것도 사고. 이거 양말도 색깔이 예쁘니까 내가 산 거야.

<장영철>
국민학교 졸업 직후 엄마가 집을 나가자 쓰레빠 신고 일주일을 걸어 서울에 왔다. 그길로 아동 보호소로 들어가 1년을 보내고, 넝마주이로 살다 근로재건대로 조직돼 3년을 보냈다. 근로재건대에서 도망쳐서는 머슴살이를 하다가 군 제대 후에는 아버지와 부산에 살며 공장에 다녔다. 하지만 아버지와 “정이 없어” 다시 집을 나온 후로는 노가다 일을 전전했다. 20대 후반인, 1980년대 초부터 약 30년간 서울역 인근의 쪽방과 거리를 오가며 지냈다. 2009년에 서울역에서 노숙하다가 명의도용 범죄에 얽혀 큰 빚을 지게 됐으며, 거기서 생긴 체납액으로 인해 누군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후암동 쪽방에서 쫓겨난 뒤 지금은 양동 쪽방에 거주 중이다. 텃밭 가꾸는 삶을 꿈꾸며 일주일에 한 번 1만원 어치 로또를 산다. 술담배는 안 하지만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멀리 나가 다방 꿀차를 마시고 돌아오는 취미가 있다. 깔끔하고 조용한 걸 좋아하는 성격으로 “술 먹고 밤새도록 떠”드는 이웃들을 멀리하며 “나 혼자 살 수 있는” 화장실과 샤워를 맘대로 할 수 있는 집, 시끄럽지 않은 동네를 꿈꾼다.

“그 사람들 조직이 전국에 깔렸어요. 조폭 들이 여기저기 연결돼 있어. 근데 이게 요즘도 있어. 노숙인이랑 나이 많은 사람을 꼬드기더라고. … 세금은 갚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따라다닌다고 하대.
“누가 나와서 나한테 수급을 만들어 주더라고. 그리고 다시서기 사람들이 와서 동자동에 방을 얻어 줬어요. 근데 그때 마음이 제대로 안 잡히더라고. 그래서 쪽방에 두어 달 있다가 다시 노숙을 한 거예요. … 식사는 차라리 노숙하는 게 낫더라구. … 노숙하면 어울릴 사람이 있어서 마음이 더 편했어요.
“예전에는 건설 일 나가면 시멘트 40킬로도 거뜬히 들었는데, 이제는 못 들어요. 큰일 났어. 이제 일용직은 못 하고 일을 한다면 공공근로를 하고 싶어요. … 근데 이걸 하면 수급이 끊어질 수 있어요.
“나도 한 번 돼봐야지 이런 심정으로 로또를 매주 1만 원어치 사요. 만약에 되면 촌에 가서 경운기 한 대 사서 텃밭 갈면서 살고 싶어요.
“여기도 저기도 아는 사람 없어요. 가족도 없고. … 어떨 땐 자다가 영원히 안 깨어나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내가 게으르게 살아서 그렇구나 자신만 탓하지.

<김기철>
어릴 적 부모를 모두 여의고 1976년에 서울로 왔다. 서울역 근처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을 시작해 젖소농장, 양계장, 돼지 농장, 새우잡이배, 식당일, 연탄배달, 엿장사 등 “오늘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전전했다. 노숙과 일세 내는 쪽방을 왔다갔다 하는 하루살이 생활을 해왔다. 폭력 사건으로 두 차례 감방 생활도 했고 서울역에서 노숙하다 두 차례 정신병원 생활도 했다. 그때부터 받게 된 수급비로 정신병원을 나와 양동 쪽방에 정착했다.
1995년,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아내를 만나 중림동에서 가정을 꾸린 적이 있다. 1999년에 은영이가 태어났다. 중림동 주인집이 건물을 팔면서 쫓겨나 은영이와 잠시 노숙 생활을 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아내가 정신병원, 언어장애를 가진 딸 은영이 장애인 시설로 가면서 가족과 이별했으나 양동 쪽방에 살며 딸과 재회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저렴 쪽방에 방세 18만 원을 내고 살고 있다. 이가 없어서 쪽방 상담소에서 주는 김치는 먹지 못하고, 깡통 고등어를 끓여 밥을 말아 먹는다. 아버지 같은 양동 할아버지와만 친하게 지낸다.

“하루 세 끼 국도 반찬도 다 달랐어. … 솔직히 들어가니까 (감방에서) 나오기 싫더라고.
“그땐 내가 노가다 일을 했거든. 일자리를 빨리 잡으려면 새벽 4시면 집에서 나가야 돼. 지금도 쪽방에서 새벽 4시면 가방 메고 나가는 소리가 다 들려.
“그 추운 땅바닥에 재활용 박스 깔아 놓고… 애가 뭘 알아. 그걸 데리고 고생 무지 시켰어. 애는 재워야 하는데 술 먹고 싸우고 지랄들 하니까 지하도에서 사는 게 힘들었지. … 쪽방은 애를 씻길 데가 없잖아. 근처에서 물 데펴 와가지고 애 앉혀 놓고 씻기고 … 애 좀 먹었어.
“은영이하고 딱 떨어지면서 … 술 먹어야 밥이 들어가고 잠을 자지, 맨 정신으론 못 자.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계속 술 먹고 우울증이란 병이 딱 들어왔지. 약을 안 먹으면 밤을 꼬빡 새.
“난 이제 60대고 그 사람은 여든이 다 돼 가는데, 그렇다고 형이라 할 거야 뭐라 할 거야. … 구멍가게에서 산 초코파이 하나 안주 삼아서 막걸리 한 잔.

<권용수>
배고픔을 참지 못해 여덟 살에 기차 타고 무작정 서울로 왔다. 그때 만난 풀빵 아줌마를 따라 양동에 들어와 67년 넘게 살았다. 중동 건설 현장, 인력 중개, 댐 공사 현장, 사채놀이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다. 그는 이 책의 다른 화자들이 무수히 당한 명의도용 범죄의 가해자이기도 하다. 아내는 교통사고로 죽었고, 15년 넘게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가 있다. “한 번에 여러 사람이 목욕하면서 서로 등을 밀어” 줄 수 있는 넓은 “공동 목욕탕”을 바란다. 수급비가 덜 나오거나 제때 나오지 않으면 바로 구청에 달려가 받아 낼 만큼 큰목소리 내기를 좋아한다. 수요일마다 열리는 길거리 사랑방 집회 개근자이기도 하다.

“이래서는 돈이 안 되겠다 싶어 운동 삼아 파지라도 해보겠다 하면서 살고 있어.
“내가 치아가 일찍부터 망가졌어요. … 싸우다 보면 이빨이 깨지고 빠지고 그러기도 했고, 일찍부터 혼자 굴러먹고 살다 보니 몸 관리를 안 한 거지. … 지금 이가 하나도 없어요. … 그러니까 맨날 도시락 받으면 밥통에다 끓여 먹어. 여기 쪽방 사람들은 거의 다 그래. 난 그냥 그렇게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사는 거예요.
“87만5000원이 나와요. … 거기에 내가 박스 수거해서 용돈을 좀 벌지. 서울역 지하도 노숙인들 깔고 자는 박스, 그걸 수거하러 새벽 5시에 나가. 지하도 노숙인들이 4시 반 되면 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야 되니까 그 박스랑 신문지랑 가지러 가는 거지. 고물상은 7시 반 정도에 가고. 그게 하루에 60~80킬로그램 나와. … 기분 좋으면 하루에 고물상을 일곱 번도 왔다 갔다 할 수 있고, 몸이 좀 이상이 있다 하면 두 번 하고 말아요. … 보통은 박스 줍는 게 일과지. 다른 일 보러 가다가도 박스가 보이면 일단 주워서 집에 갖다 놓고 가.
“쪽방 자체가 좋은 거는 아니지만, 지금 이 집이 계단 올라갈 필요도 없고 좋아. … 이 동네에 계속 정착할 수 있다면 여기서 더 살고 싶어. … 여기를 떠나기 싫어서 그대로 이 동네 이 쪽방에 사는 거야.

<강성호>
서울 효창동에서 태어나, 수유리에서 살았다. 아버지의 폭력으로 초등학생 때 부모님이 헤어졌다. 이자 놀이를 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50년간 “직업 없이” “못된 짓”을 하며 살았다. 어머니 사망 후 300만원을 갖고 독립생활을 시작했지만 2년을 못 채우고 동네 공원에서 노숙을 시작한다. “다 아는 사람들이라 챙피해서” 2년 후 서울역으로 온 그는 다리 위에서 박스집을 지어놓고 3년을 살았다. 서울역에서 사는 동안 종종 노가다를 뛰기도 했지만 (다리가 불편했던 그를 받아 주는 곳은 거의 없었고) 오랜 노숙 생활로 건강이 나빠져 서울역과 병원을 오가는 생활을 10년 했다. 명의도용으로 생긴 차 때문에 한 차례 수급을 거절당했다가 2017년에 수급자가 되어 양동에 살고 있다. 아픈 다리 때문에 좌식 생활이 힘들지만 쪽방엔 의자 놓을 공간조차 없기 때문에 늦게까지 서울역을 돌아다니다 새벽에 들어와 몸을 누인다.

“나도 모르게 노숙자라는 게 되더라고. … 어머니 돌아가셨지, 형 돌아가셨지, 다 돌아기시면서 집안 그지 된 거야. 노숙할 때는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죽고 싶은 생각 말고 더 하겠어요? … 한 번은 약 먹고 죽으려고 해봤는데 안 되더라고. 이틀 만에 깨어났나. 밥도 거의 안 먹었어요. 술만 마신 거야. 술은 내가 돈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먹게 되더라고. … 정신 잃고 쓰러져서 그냥 영원히 눈 뜨지 않았으면 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야.
“수급 실패하고 노숙인 자활 시설 갔다가 병원 있다가 3년 전에 서울 왔어. 이제 내가 혼자 버틸 힘이 없더라고. 죽을 것 같다, 그래서 구청을 한번 가봤어. 직원이 이제 내 앞으로 차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잘하면 수급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고 다시서기에 찾아갔어요. 내가 설명을 하니까 한번 해보자고, 될 거 같다고 하더라고. 신청하고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입원했어요. 한 달 정도 있다가 직원한테 수급이 됐다고 연락이 왔어. 직원이 ‘강성호 님 잘됐네, 됐습니다’ 하더라고. 얼마나 감사해요. 나는 수급 안 됐으면 지금 죽었을지도 몰라요. 나 거의 기어 다녔어요. 그 직원이 최선을 다해서 된 거예요. 그게 돼서 이 정도 버티는 거예요.
“처음에는 내가 수급자인 게 적응이 안 되더라고. 사나흘 되면 없어. 방세 주고, 술 한 잔 먹고, 담배 사고 하면 없어. … 근데 어느 날 갑자기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낭떠러지에 서있는데 더 가면 내 인생 끝나는 거다. 여기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말고 버텨 보자. 이 악물고 절약해 보자. 절약을 안 하고는 살 수가 없지. … 절약하는 사람들은 엄청 절약해요. 쓰라고 해도 안 써. ‘너 죽어서 돈 싸가지고 가냐’ 하면 막 웃어.
“집주인이 네다섯 번 찾아오니 집 때문에 속상해서 며칠을 술만 마셨어요. 너무 스트레스 받고 귀찮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 싸우고 싶지도 않더라고. 그래서 나 이사 간다고 말했지. 도저히 힘들어서 이사 비용만 달라고 하고 이사한 거야. … 양동에 3년 살았는데 이사는 다섯 번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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